양중리 구들장길구들장논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과 그 이야기가 있는 길
거리 | 1km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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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요시간 | 40분 |
출발점 찾기 | 청산도항에서 마을버스 - 양지리 하차 |
양지리 구들장논 탐방로는 켜켜이 쌓인 구들장논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청산도 사람들의 이야기가 배어 있는 길이자, 구들장논과 다랭이논의 색다른 경관을 비교하여 조망해 볼 수 있는 길입니다. 양지리 마을입구에서 출발해 구들장논의 단층구조를 볼 수 있는 구들장논 체험장을 지나 층층이 계단을 이루어 펼쳐져 있는 구들장논지역(덜럼)을 지나쳐 내려오다 보면 구들장논과 다랭이논 풍경이 한 눈에 펼쳐지는 이색적인 경관을 누릴 수 있습니다. 마을 곳곳에 전해오는 이야기 속 옛 지명과 구들장논 이야기를 찾으며 걷는 즐거움을 느껴 보세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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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01.구들장논 샛똘
- 구들장논의 용수량을 조절하고 농작물의 냉해를 막기 위해 통수로 앞 혹은 석축을 따라 작은 돌을 이어놓아 만든 보조수로입니다. 청산도에서는 구들장논의 크기와 위치, 물의 양에 따라 샛똘의 형태와 규모를 달리하여 조성하였으며 샛똘을 열고 닫음으로써 경작상황에 맞게 구들장논의 용수량을 조절하였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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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02.구들장논&다랭이논 조망점
- 구들장논과 맞은편 다랭이논의 경관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. 구들장논과 다랭이논은 계단식 논의 모습으로 비슷해 보이지만, 이 곳 구들장논에서만 통수 로, 샛똘과 같은 독특한 논의 특징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.
- 구들장논&다랭이논 비교
- 청산도 구들장논은 다랭이논(계단식논)과 유사한 분포 위치와 형태를 보여 논의 외형만으로는 구분하기 어렵습니다. 내부구조를 살펴보면, 구들장논은 인위적 으로 구들(돌)을 가져와 놓아 논의 기초를 쌓고 그 위에 흙을 다져서 만든 논으로 단일 층위구조의 일반 다랭이 논과 구조적 차이점을 보입니다. 또한 구들장논에는 논의 용·배수 조절을 담당하는 정방형의 암거(통수로, 수직수구)가 구들장논의 하부 석축에서 관찰된다는 것이 특징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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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03.구들장논 체험장
- 청산도 구들장논 체험장은 국가중요농업유산 지정(20 13.01) 및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(2014.04) 이후 기존 체험장을 정비하여 ‘구들장논 경작지’와 ‘농업문화 체험공원’으로 조성하였습니다. 구들장논의 구조(샛똘, 통수로, 석축 등)와 특징 관찰, 역사·이야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열린 박물관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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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04.느린섬 여행학교
- 느린섬여행학교는 2009년 폐교된 청산중학교 동분교를 슬로푸드 체험관, 숙박동(테마동/가족동), 홍보관 등을 갖춘 다목적 복합시설로 리모델링하여 2012년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. 슬로푸드 음식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.
slowfoodtrip.com (061-554-6962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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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05.소꼬매
- 양지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구들장논 지역을 이르는 옛 지명으로 특히 경사가 심한 이 곳의 구들장 논을 오르내리다보면 소꼬지(속옷) 끝이 다 닳게 되었다 고 해서 소꼬메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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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06.특별보전관리구역 (덜럼)
- 양지리에서 물이 마르지 않아 늘 땅이 축축한 지역을 마을주민들은 덜럼이라 부릅니다. 물 빠짐이 심한 사질토양의 청산도에서는 논농사를 짓기 좋은 귀한 땅에 속합니다. 덜럼은 양지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들장논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지역으로 현재도 구들장논 경작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특별보전관리 구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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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양지리 구들장논 조성 이야기
- 양지리에서는 1940년대 후반까지 구들장논이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. 당시 작은 구들장논 하나를 만드는 일은 수개월 또는 1~2년의 시간이 걸리는 고된 일이었기 때문에, 함께 구들장논을 만들 군사(힘이 센 장정)를 마을의 젊은이들로 선발했습니다. 군사들은 이른 새벽부터 모여 구들장논에 돌을 쌓고, 물길을 잡고, 흙을 덮는 작업을 해가 떨어질 때까지 반복해야 했습니다. 군사 중에 한명은 다른 군사들이 힘들어질 때쯤 꽹과리를 치고 “에헤라디야 / 상사디야 / 우리 군사 잘도 한다”라고 선창함으로써 함께 일하는 군사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서로를 응원하도록 도왔습니다. 또한 마을의 아낙들은 때가 되면 논에 새참을 나르고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북장단을 치고 농요를 불러주기도 했습니다.